기념품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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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겨울이 가고 봄이 왔다. 봄은 꽃으로부터 온다. 여기저기 다투어 일어선 꽃들이 일시에 지기 시작한다. 봄꽃은 그렇다. 화려함을 뽐내는가 싶은데 어느새 지고 있다. 얼마 가지 못하는 꽃들을 향해 나무는 슬퍼하지 않는다. 보내줘야 할 때를 알기 때문이다. 그것이 인간하고 다른 점이다.
내게 시는 사적인 기록이다. 누군가는 그걸 고백체 시라고 했다. 그렇다고 이번에 쓴 시편들이 모두 사적인 마음을 담은 건 아니다. 그런 것들이 조금 많다는 의미이다. 지나온 삶을 반추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감정이 조금 과하게 들어간 부분이 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그것도 나인데.
문단에 데뷔하고도 난 시를 쓴다는 말을 안 했다. 요즘 같은 시대에 뭘 쓴다는 게 대단한 것도 아니고 자랑거리도 못 되기 때문이다. 그저 조용히 나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족했다. 가끔 끄적거려 아내에게 들려주는 게 전부였다.
그러나 요즘 이런 생각을 한다. 나이를 먹었든 먹지 않았든 어차피 인생은 서툰 것이라고. 서툰 인생에서 나온 내 글도 서툰 것이라고. 그러면서 프랑스 시인인 크리스티앙 보뱅이 '단 한 편의 시라도 주머니에 있다면 우리는 죽음을 건널 수 있다'라는 말을 작은 위안으로 삼고 한 편의 시를 읽고 쓴다.
종종 생각한다. 난 누구인가? 뭐 하는 사람인가? 오늘은 무얼 하며 시간을 보냈나. 나이를 먹다 보니 그런 생각이 불쑥불쑥 든다. 그렇다고 뭐 철학적 반문을 하는 건 아니다. 그저 그렇다는 것이다.
한동안 우리 주변에서 사라져 가는 것들에 관심을 가진 적이 있다. 한때는 누군가의 안식처이고 삶이고 웃음이고 눈물이었을 빈집을 바라보노라면 많은 생각이 들곤 했다. 촌놈인 내게 빈집은 그저 허물어져 가는 곳이라기 보단 많은 추억의 지푸라기 같은 존재다. 그곳엔 세상을 일찍 등진 친구도 있고, 어릴 때 고향을 떠나 지금은 서울 어느 곳에 살고 있는 친구도 있다. 구순이 넘은 노모도 있고, 이 세상을 떠난 친구의 엄마들이 어린 추억으로 남아있다.
인간은 한 줌밖에 안 되는 그 무엇을 움켜주기 위해 온갖 술수를 부린다. 떠날 줄을, 놓을 줄을 모른다. 그래서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라고 노래한 이형기 시인의 시구는 새삼 주변을 돌아보게 한다.
시집을 냈다. 아니 시집이란 걸 세상에 내놓았다. 벌써 넉 달이 되어간다. 시집을 내고도 끙끙 앓는 정도는 아니지만 숨기고 있다. 정말 가까운 몇 사람 빼곤 종종 얼굴을 보며 밥을 먹고 차를 마시는 사람들도 시집을 낸 줄 모른다. 아마 성격 탓일 것이다. 드러내는 걸 좋아하지 않는 성향과 기념품제작 한 권의 책으로 묶은 시에 대한 부끄러움, 아마 이런 것들이 책을 내고도 밝히지 않은 이유라면 이유다.
이번엔 낸 책은 조금은 조바심의 산물이다. 퇴직 1년을 앞두고 뭔가 흔적을 남기고 싶은 조바심이 일단 저질러 놓자 하는 마음이 한 권의 책을 세상에 내놨다 할까. 내용의 충실성이나 작품성을 떠나 하나를 내놓으면 다음에 좀 더 나은 것을 세상에 내놓을 것 같은 마음. 그 마음이 늦은 나이에 조산을 한 것 같다는 마음을 감출 수가 없다.